20110904

2011/09/05

저녁 늦은 시간도 아닌데, 해는 이미 져서 하늘이 어둑해져있고, 바람이 불현듯 싸늘한 기운을 품고 창문을 넘고 있었다.

새벽에 온갖 잡념으로 잠을 설쳐서인지, 오후까지 샤워도하지 않은 체, 쇼파에서 뒹굴고 있었다. 윤동을 해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룬지가 벌써 몇달이 지닌듯 하고, 오른쪽 팔뚝 쪽의 근육통은 아직도 여전하여, 핑계 삼아 이리빼고 저리빼고 스스로 한없는 무기력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듯 하다.

오후에 잠깐, 후배와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려 삼청동에 다녀 온 것을 빼고는, 오늘 일요일도 그렇게 무의미하고 설레임없이 보내고 말았다.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해야되는 숙제를 하지 않은 사람처럼, 그렇게 회사업무에 대한 무게와 부담의 강도랄지, 어떤 미확정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랄지 그런것들이 심해져 옴을 느끼면서, 잠자리에 들면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로 한참을 뒤척이다 잠을 설치기 일쑤이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너무 쌀쌀하고, 닫고 그냥 자려니 약간 더운듯하여, 애기담요 배에 살짝 덮고 선풍기를 약하게 틀어 놓았다.

아주 어렸을 적 부터의 그 선풍기 약풍의 바람소리에 자장가를 듣듯 마음은 편안해 지고,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익숙해 지지 않는 저 시계 바늘 소리만이 간혹 거슬릴뿐, 가끔 폭주를 하는듯 한 창너머 대로변의 엔진 소리만 멀리 속삭이듯 지나 간다.

라디오도 틀지 않았다. 다른 음악도 텔레비젼도 틀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이런 고요함을 느끼고 싶었던가 보다. 시끄러울 것도 없는 내 인생도 가끔 아니 자주 이렇게 이런 고요함을 느끼고 싶을 때도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한낮에는 거을이라기엔 막바지 더위가 서먹하지만, 아침 저녁의 이 기운은 분명 가을인가 보다. 창문을 열면 그 가을 냄새가 향긋하게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떠한 불쾌함도 없이 침대에 등을 기대고 이불을 하나 배에 덮고 이렇게 고요함을
느끼며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일찍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싶다. 느껴지는 육체의 피로감과 내 가슴의 지쳐감을 늦추기 위함이다.

멍하고 불쾌한 기분으로 이 가을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선가 나타나 내 앞에서 환하게 웃을 그 사람의 얼굴을 가능하면 가장 멀쩡한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은 까닭이다.

몇 번의 여름을 보내면서, 지쳐서 초췌해진 모습으로 맞이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오늘 이 시간도 가고오지 않을, 내 지나온 기억이 되겠지만, 어쩌면 별다를 것 없는 또 한 번의 하루, 또 한 번의 가을이 되겠지만, 무엇에든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고 싶다. 그리고 당당한 느티나무가 되고 싶다. 멀리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배를 위한 등대처럼, 멀리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오는 사람을 위한 커다란 느티나무가
되고 싶다. 가을잎 다 떨꾸어 내도
초라하지 않는 그 나무가 되고 싶다.

가을의 문턱에서
내 집앞 창문 아래에서
창문 두드리지 못하고 서성이는
낯익은 그 얼굴을 그리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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